나가사키, 잊힌 한국인 원폭 희생자 | 원폭 투하~한국인 위형비 찾아가는 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서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실전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단 한 발의 폭탄은 도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희생자 가운데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 유학 등의 이유로 나가사키에 머물던 수많은 한국인(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나가사키, 잊힌 한국인 원폭 희생자

💥 원폭 투하와 참상

1945년 8월 9일 투하된 원자폭탄 '팻맨(Fat Man)'은 나가사키 우라카미 지역 지상 약 500m 상공에서 폭발하며 엄청난 충격파, 열선, 방사선을 발생시켰습니다.

폭심지와 가까웠던 우라카미 지역은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불탔으며, 수많은 주민과 노동자가 즉사하거나 참혹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 나가사키 원폭 및 한국인 피해 개요

구분

주요 내용

원폭 투하 일시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사용 폭탄: 플루토늄 원폭 '팻맨')

투하 기체 / 목표

B-29 폭격기 '복스카(Bockscar)' / (당초 목표: 고쿠라 ➔ 기상 악화로 나가사키 변경)

전체 피해 규모

1945년 말까지 약 7만 명 사망, 7만 명 이상 부상, 약 27만 명 피폭

한국인 피해 규모

약 2만 명 피폭 / 약 1만 명 사망 추산 (추정 수치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음)

한국인 존재 배경

미쓰비시 조선소·군수공장 강제동원, 광산 노동자(하시마/군함도 등), 학생 및 이주 주민

⛓️ 나가사키에 한국인이 많았던 이유와 생존자의 고통

당시 나가사키는 미쓰비시 조선소, 제강소, 병기창 등 일제의 핵심 군수 시설이 집중된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조선인이 군수공장과 광산 등으로 강제동원되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중 원폭 피해를 입었습니다.

1.1. 강제동원 및 이주:미쓰비시 조선소·군수공장 등 강제 배치.
2.2. 원폭 투하와 참상:약 2만 명 피폭 / 1만 여명 사망.
3.3. 광복 후 귀국과 고통:의료 지원 소외와 사회적·경제적 차별.

일제의 수탈 및 강제동원 정책으로 인해 수만 명의 조선인이 나가사키의 주요 군수 시설과 광산 등에 배치되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원폭 폭발로 약 2만 명의 한국인이 피폭되었고, 그중 약 절반에 달하는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방 후 귀국한 생존자들은 방사선 후유증과 병마, 빈곤 속에서 오랫동안 적절한 의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었습니다.

⚖️ 끝나지 않은 방사능 후유증과 싸움

살아남은 피폭자들은 암, 백혈병, 만성 질환, 정신적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특히 한국으로 귀국한 피폭자들은 장기간 일본 정부의 의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소외를 겪었으나,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및 피해자들의 끊임없는 법정 투쟁을 통해 권리를 조금씩 넓혀왔습니다.

🏛️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 추모비

나가사키 평화공원 내에는 한국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1979년 위령비: 일본 시민들과 재일동포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평화공원 인근에 처음 건립되어 한국인 희생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 2021년 한국 정부 지원 추모비: 오랜 협의 끝에 2021년 나가사키 평화공원 내부 중심 구역에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새로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가 건립되어 더 많은 방문객이 이 역사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나가사키 평화공원 & 한국인 위령비 찾아가는 방법

나가사키 시내 중심가에서 대중교통(노면전차)을 이용해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1. JR 나가사키역(Nagasaki Station) 출발 기준

  • 노면전차 (나가사키 노면전차) 이용 시:

    • 1호선(아카사코/Akasako 행) 탑승 ➔ '평화공원(헤이와코엔, 平和公園)' 역 하차 (약 10~15분 소요).

    • 역에서 내려 도보로 약 3~5분 이동하면 평화공원 입구에 도착하며,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통해 공원 상부로 올라가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비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 주요 연계 방문 코스

  • 평화공원 내 한국인 추모비 ➔ 나가사키 평화기념상원폭폭심지 공원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순으로 도보 이동하며 둘러보기 좋습니다.

💡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나가사키 원폭은 단순한 일본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식민지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강제로 끌려와 희생되어야 했던 수많은 한국인의 삶과 눈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국적과 민족을 넘어 희생자들의 고통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미래 세대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핵무기 없는 평화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첫걸음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나가사키 원폭은 언제 투하되었나요?

A.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투하되었습니다.

Q2. 나가사키에서 피해를 입은 한국인은 얼마나 되나요?

A. 약 2만 명의 한국인이 피폭되었으며, 이 가운데 약 1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Q3. 한국인 위령비(추모비)는 어디에 있나요?

A. 나가사키 평화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노면전차 '평화공원(平和公園)'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결론

나가사키 원폭은 인류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으며, 그 깊은 그늘 속에는 강제동원의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추모비는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고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전해주는 상징입니다. 과거를 바르게 기억하는 노력을 통해 참혹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