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의 역사|마쓰마에 번의 지배부터 동화정책, 그리고 오늘날까지
홋카이도 하면 게와 해산물, 광활한 자연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수백 년 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처음 아이누족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만남이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입니다.
1. 일본 본토인과 다른 뿌리, 아이누족의 기원
홋카이도는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면적을 가졌습니다. 일본 전체 면적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은 땅인데, 현재 인구는 약 550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 광활한 땅에 12~13세기경부터 자리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아이누족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인간'이라는 뜻의 '아이누'라 불렀으며, 일본 본토인과는 전혀 다른 계통인 동북아 고대 북방 민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도 시대 기준으로 아이누 인구는 약 2만에서 3만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혹독한 북방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강가나 바닷가에 마을을 이루어 살았고, 어로와 수렵을 중심으로 생활을 꾸렸습니다. 민족지학(Ethnography)적 관점, 즉 특정 민족의 생활 방식을 현장에서 직접 기록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누족의 문화는 일본 본토와는 완전히 별개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아이누족을 '오랑캐'라 부르고, 그들이 사는 홋카이도를 '애조치(蝦夷地)', 즉 오랑캐가 사는 땅으로 규정했습니다. 주인이 없는 땅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서서히 손을 뻗기 시작한 것이 15세기 전국 시대부터입니다. 전쟁에서 밀려난 무사와 상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홋카이도로 이주하면서, 아이누족의 비극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 마쓰마에 번의 지배와 경제적 착취
17세기 초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본격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에도 막부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무가 정권으로, 이후 약 260년간 일본을 지배한 봉건 통치 체제입니다. 이 시기 홋카이도 남단에서 세력을 키운 마쓰마에 가문이 막부로부터 홋카이도 지배권과 아이누족과의 교역 독점권까지 공인받았습니다.
마쓰마에 번은 아이누족에게 필수적인 철제 도구, 즉 솥과 칼, 도끼 등을 독점 공급하면서 교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아이누족이 잡아온 청어와 해삼 같은 해산물은 일본 본토에서 높은 값에 팔렸는데, 정작 아이누족이 손에 쥔 것은 그 가치에 턱없이 못 미치는 철제 도구 몇 개였습니다. 제가 직접 홋카이도에서 들은 이야기이기도 한데, 당시 교역 구조를 설명하는 아이누 친구의 목소리에는 담담한 쓴웃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마쓰마에 번이 아이누족을 통제하는 방식은 교묘했습니다. 협조적인 아이누 지도자를 지역 책임자로 임명하고 쌀과 물자로 회유하는 한편, 잔치를 빌미로 아이누 지도자들이 마쓰마에 관리 앞에 엎드려 조아리는 장면을 연출하게 했습니다. 두 집단 사이의 위계를 공개적으로 각인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저항하여 1669년 홋카이도 서부의 아이누 족장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2천 명이 넘는 아이누족이 봉기했습니다. 그러나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앞에서 허망하게 진압당했고, 이후 경제적 통제가 더욱 노골화됩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아이누족은 사실상 노동력 공급원으로 전락합니다. 일본 본토의 농사에 필수적인 어비(魚肥), 즉 청어를 가공해 만든 물고기 비료 생산에 저임금으로 동원된 것입니다. 여성은 일본인 어부의 첩이 되거나 감시를 받으며 일했고, 남성은 밤낮없이 부려지다 병들면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천연두와 매독 같은 전염병까지 퍼지면서 아이누족의 사망률은 급증했습니다. 1789년 다시 봉기가 일어났지만 내부 분열로 자진 해산되었고, 마쓰마에 번은 자진 해산한 이들 중 주동자 37명을 사형에 처하며 공포 통치를 굳혔습니다.
3. 메이지 유신과 홋카이도 동화정책의 실체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시작된 것은 1868년의 일입니다. 메이지 유신이란 천황 중심의 근대 중앙집권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단행된 일본의 정치·사회적 대개혁을 뜻합니다. 보신 전쟁에서 패배한 막부 잔존 세력이 홋카이도로 건너가 '에조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신정부군에 의해 5개월 만에 진압되면서 홋카이도는 완전히 일본의 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1869년, 일본 정부는 '오랑캐의 땅'이라는 뜻의 '애조치' 대신 '홋카이도(北海道)'라는 이름을 공식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북쪽의 바닷길을 다스리는 땅'이라는 뜻으로, 해양 제국으로 뻗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이름 하나에 담아낸 셈입니다. 같은 해 삿포로에는 중앙정부 직속의 강력한 행정 기관인 '개척사'가 설치되었습니다. 개척사의 상징인 북극성 마크의 다섯 빛줄기가 문명·교육·산업·문화·개척을 상징했다는 사실은, 이 기관이 얼마나 제국주의적 이상 아래 운영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이누족에 대한 동화 정책(同化政策), 쉽게 말해 특정 집단의 언어·문화·정체성을 지배 집단의 것으로 강제 흡수하는 정책은 이 시기 본격화됩니다. 1872년에는 아이누족이 대대로 살아온 땅을 '주인이 없는 땅'으로 선언해 국가 소유로 편입하고 일본인들에게 헐값에 넘겼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아이누족이 갈 곳은 없었습니다.
1899년에는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이 제정됩니다. 이름만 보면 보호법처럼 들리지만, 실제 내용은 아이누족의 전통 생활인 사냥과 어업을 전면 금지하고 농사를 강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지급된 땅도 대부분 척박한 불모지여서, 아이누족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내몰렸습니다. 여성의 입문신이나 남성의 수염 같은 전통 풍습은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으며, 모든 아이누족은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해야 했습니다.
훗날 일본이 아시아 각지를 지배할 때 적용한 식민 통치 방식의 첫 번째 모델이 바로 이 홋카이도 동화 정책이었다는 점은, 지금 돌아봐도 섬뜩합니다. 피지배 민족을 외부인이 아닌 '신민'으로 만들어 값싼 노동력으로 부리겠다는 발상이 이미 이때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누족의 현재 인구는 약 15,000명으로 추산되지만, 일본인과의 혼혈이 워낙 광범위하게 진행된 탓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고 합니다. 출처: 일본 국토교통성 홋카이도 개발국에 따르면, 홋카이도의 체계적 개발과 행정 편입 이후 본토에서의 대규모 인구 유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아이누족의 인구 비율을 급격히 줄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4. 지금도 홋카이도에서 살아가는 아이누족
제가 홋카이도에서 만난 아이누족 친구는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특별히 달라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본 북쪽 지방의 평범한 청년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안에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조용하지만 선명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는 아이누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 아직 건재합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홋카이도에서 사할린까지 쫓겨난 아이누족의 생활 방식과 신앙을 현대에 전달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2020년에는 국립 아이누 민족 박물관 '우포포이(Upopoy)'가 홋카이도 시라오이에 개관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2019년 아이누족을 공식적으로 '선주민족(先住民族)', 즉 어떤 지역에 외부 세력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살아온 원주민 집단으로 법적 인정을 한 이후의 변화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냉정합니다. 아이누족의 문화를 계승하려는 젊은이가 줄고 있고, 관광지로서의 아이누 문화는 점점 표면적인 볼거리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의 척박한 땅에 머물다가 결국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과정과 겹쳐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아이누족의 현재 상황을 숫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재 추산 인구: 약 15,000명 (혼혈 증가로 정확한 수치 파악 어려움)
- 일본 정부의 선주민족 공식 인정: 2019년 아이누시책추진법 제정
- 국립 아이누 민족 박물관 우포포이 개관: 2020년, 홋카이도 시라오이
- 전통문화 계승 인력: 언어와 의례를 구사하는 인구가 급속히 감소 중
- 홋카이도 총인구 대비 아이누족 비율: 약 0.3% 미만으로 추정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소수민족 보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여행업계에서도 점점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여행 상품이 늘고 있지만, 정작 아이누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경우는 드뭅니다. 문화를 소비하면서도 그 문화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모른 채 지나치는 관광 방식이, 의도치 않게 문화 소멸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5.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누족은 현재 일본에서 법적으로 어떤 지위를 갖고 있습니까?
A. 2019년 제정된 아이누시책추진법에 의해 아이누족은 일본의 선주민족으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토지 반환이나 자치권 부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실질적인 권리 회복보다는 문화 보존과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Q.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언제 폐지되었습니까?
A.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무려 1997년까지 약 100년간 유지되었습니다. 1997년 아이누문화진흥법으로 대체되었고, 이후 2019년에 선주민족 지위를 명시한 아이누시책추진법이 새로 제정되었습니다. 법이 바뀌는 데만 한 세기가 걸린 셈입니다.
Q. 아이누족의 전통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A. 홋카이도 시라오이에 위치한 국립 아이누 민족 박물관 우포포이(Upopoy)가 대표적입니다. 2020년 개관한 이 시설은 아이누의 언어, 의례, 생활 도구 등을 전시하며, 전통 공연도 정기적으로 진행됩니다. 다만 언어와 의례를 실제로 구사하는 아이누족 자체가 줄고 있어, 살아있는 문화로서의 전승은 계속 위협받고 있습니다.
Q. 아이누족은 일본인과 외모가 다릅니까?
A. 아이누족은 일본 본토인과 다른 유전적 계통을 가지며, 전통적으로 더 짙은 체모와 깊은 이목구비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에 걸친 일본인과의 혼혈로 현재는 외모만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누족 친구도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일본 청년으로 보였을 정도입니다.
Q. 마쓰마에 번은 어떤 방식으로 아이누족을 경제적으로 지배했습니까?
A. 마쓰마에 번은 아이누족에게 생필품인 철제 도구의 공급을 독점하고 교역권을 일본 상인들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켰습니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아이누족을 어비 생산에 저임금으로 동원하면서 실질적인 강제 노동 구조를 만들었고, 이는 노예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착취 구조였습니다.
6. 결론
홋카이도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게 요리와 온천만큼이나 이 땅의 원래 주인들이 어떤 역사를 살아왔는지를 한 번 들여다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우포포이 같은 박물관에서 한 시간만 머물러도 아이누족의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인정이 실질적인 지원과 문화 계승으로 이어지길, 그리고 그 청년이 자기 조상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VVTB6tpc5M